CBS 방송의 한 오프닝을 듣고..
<전문>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일 시사자키 진행을 맡은 김용민입니다.
갑자기 이 대통령 생각이 납니다.
이 대통령은 교회 장롭니다.
이 대통령은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입니다.
이 대통령은 친일파와 손 잡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정적을 정치적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해 결국 도발하도록 조장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치는 날마다 꼬였습니다.
이 대통령 주변에는 아첨꾼들로 들끓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니까 경찰을 앞세워서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하더니 그곳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맡게 됩니다.
이 대통령은 결국 국민들의 외면으로 국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쓸쓸하게 세상과 작별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현재까지는…
http://www.cbs.co.kr/radio/pgm/?pn=list&bcd=007C055E&pgm=1383&mcd=BOARD1&bgrp=2&pcd=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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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CBS의 방송을 듣습니다. 종교방송이긴 하지만, 종교적인 색깔이 거의 없어 몇 개의 방송을 선별해서 듣고 있습니다.
좋은 노래들과 듣기 좋은 멘트들이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가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성으로 상록수가 흘러 나오기도도 하더군요.
이번 주말에 잠시 농부가 되어 보았습니다.
밭 갈고, 콩 심고, 고구마 심고 등등 물 긷고 삽질하고 삽질하고 또 삽질하고..
작은 텃밭이었지만 꽤나 힘들더군요 ㅠ_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는데,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가 나오는데,
땅은 이렇게 정직한데, 이 사회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왜 자꾸 제게 거짓말을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선 정직하면 바보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생명이 씨앗이 되어 민주주의라는 꽃이 활짝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서평] 눈먼자들의 도시
누구나 초등학교 (또는국민학교) 시절 들어보았음 직한 우리나라 속담. “눈가리고 아웅”, 오늘은 때거지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내용, 바로 포르투갈 작가 중 한명인 주제 사라마구가 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이다.
1. 내용은 이렇다. 어느 도시의 어느 한 사람을 필두로 전염병 처럼 번져가는 실명.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라고,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눈이 멀게 되자, 정부는 이 질병의 확산을 막는다는 미명아래 그들을 한 정신병원에 가둔다. 정신병원에서 자행되는 더러운 모습들. 눈먼 자들이 불을 내고, 밖으로 뛰쳐 나왔을 땐 이미 전 도시가 눈이 멀고 만다. 단 하나의 여자 (책에서 말하는 안과)의사의 아내를 제외하곤.
의사의 아내는 그의 남편과 몇 몇 실명한 이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그들을 돌본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과 도시에 갇혀 있는 동안, 그녀는 실명한 인간과 실명한 인간을 대하는 실명하지 않은 인간들 속에서 때론 실명한 것처럼 또 실명하지 않은 것 처럼 행동하며, 살아 남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다. 마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2. 저자는 눈이 멀어가는 인간과 그들을 대하는 정부를 통하여 인간의 내면과 이들이 이루는 사회(조직)을 그려내며 현실을 비꼬고, 의사의 아내에 인간의 선함을 그려냄으로써 부패한 현실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 주인공들이 눈이 먼 후 찾아가는 행복을 그리며,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인간의 목소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단어 아래 수 없이 자행되는 불법적인 악행들을 우리는 지켜보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선한 소수의 목소리를 짓누기는 것을 보며, 우리는 눈먼 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의심을 해볼만 하지 않을까?
3. 이 책의 구성이 상당히 독특했다. 독자의 집중력을 배가 시키는 구어와 술어가 구분되지 않는 문체. 누구인지 어디인지 알려 주지 않고, 특유의 묘사, 은유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집 속의 답안지가 포함되어 문제를 푸는 재미가 떨어지도록 하는 것처럼, 책의 맨 뒤에 포함된 어느 교수의 설명은 저자의 의도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어, 독서 후 저자의 의도를 푸는 재미를 반감시켜버렸다.
들리는 소리에 의지하여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본 모습을 보지 않고 손과 발로 형체를 생각하고, 찾은 먹이를 몰래 숨겨두고 혼자서 독차지하려는 눈먼자들의 모습. 잘못된 길을 바로 앞만 보며 걷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이 우리 모습이 아닌가? 이제 그만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잘못된 길임을 인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런 나라가 되어야 겠다.
[서평]학문의 즐거움
가장 사람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사람이 동물과 다른점은 무얼까? 무엇이 이토록 인류라는 종족을 번성하게 하였을까? 많은 해답이 있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는 학습이 아닐까 한다. 모든 인간이 똑같은 조건으로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학습을 위해 노력하는 자가 그렇지 않는 자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질 수 있고, 또 이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 노력이라는 고통을 이긴자 만이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라고 말하는 책. 학문의 즐거움이다.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오직 끈기 하나로 필드상(수학의 노벨상 정도)을 받은 사람이다. 책에선 그의 인생에서 얻은 경험을 예로 들며 학문과 창조 그리고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즐기며 살아온 그의 인생을 읽어 보며, 공감하는 부분을 몇가지 적어본다.
‘산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벌어서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또는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등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p.32
‘생각한다는 것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p.39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혹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깊은 사고력뿐이라고 생각한다.
p.44
어차피 잊어버릴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왜 배워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그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단순 명쾌하게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p.136
도전이 없는 인생은 놀라움이나 커다란 기쁨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끈기라는 것을 일찍 정복해 버린 저자를 보며, 의지박약한 자신을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된책. 학문의 즐거움.
결실과 장미
크건 작건간에,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자 하는 이는
허리를 굽혀서 땅을 파야만 한다.
소망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극히 적은 까닭에
우리가 원하는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건
일함으로써 얻어야 한다.
당신이 어떤 것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의 비밀이 여기 쉬고 있기에
당신은 끊임없이 흙을 파야 한다.
결실이나 장미를 얻기 위해선.
- 에드가 게스트 -
화장실에 갈때 책을 들고 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동안 소설, 기술서, 만화책등 많은 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읽을 수 있는 양은 고잣 한 두장(만화책은 볼일 본 후에도 계속 앉아 있게 되므로 패스~)이런 이유로 들고 다니는 책을 바꾸었습니다. 바로 시집!
비단 위의 이유만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시집을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중 오늘 발견한 시가 바로 위의 시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살다보면 일을 하는 이유를 잊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땐 더욱 힘들죠.
허나, 어떤 결실을 위하여 우리는 이 도전을 시작했고, 지금도 목적지를 위해 한발자국씩 내 딛고 있음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잊고 있던 이 사실을 다시 되새기게 해주는 시의 한 자락이 참 고맙네요…
술통 - 모리야 센인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만일 - 루디야드 키플링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책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어제 본 무릎팍 도사에서 비가 하나의 자극이 되었고, 그전에 나를 다시 찾아보기로 한것이 다른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 어찌되었건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말할 수 없는 비밀 감상기
그동안 보고자 벼르고 벼르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이제서야 보고 말았다. 추석특집!! 으로 해준 티비(텔레비전이 아님)에서,, 간만에 티비가 고마웠다능.
줄거리는 이미 많이들 봐서 알 것이고, 오랜만에 가슴 설레이는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주걸륜의 피아노 솜씨는 그동안 일하면서 피아노 배틀 동영상에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배우 계륜미의 매력은 전혀 들은바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발머리를 해서 인지, 또는 그녀의 웃음에 매력이 있는 것인지.. 2시간 가까이 되는 상영시간 동안 나의 눈동자는 그녀만을 쫓고 있었다.

구글링을 통하여 그녀의 출연작들과 사진들을 찾아보았는데, 초쿰실망! 그냥 이 영화속의 계륜미만 좋아하련다.
영화속의 OST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솔직히 초반의 잘려나가는(?)듯한 장면들에 대하여 “역시 중국제구나..”라고 실망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잘 짜여진 각본과 예상외의 시나리오에 대하여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현실적이지 않은 테마와 클라이막스,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계륜미와 졸업사진을 보인 엔딩장면이 마음속에 남은 영화다.
영화의 중간에 나오는 남여간의 감정이 쌓아가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느낀 설레임… 모지?
이렇게 08년도 나의 추석은 지나가고 있었다..
사용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다.
요즘 회사의 팀 개편에 따라 사용자(user)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나 학부 재학시절부터 관심만 걸쳐 놓았던 분야 인데, 이제 와서 공부를 시작하려니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하나 하나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는 날 보고 있자니 무섭기도 하기 대견하기도 하다.
사용자. 상당히 공학적인 늬앙스를 풍기는 단어다. 이것에 대해 이해하는건 우선 인간을 이해 해야 하기에 철학적이어야 하고, 시스템을 이해 해야 하기에 공학적이다. 간단하지 않단 이야기다. 절대 단순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용자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다루는가? 이것에 대해 궁금해 해야 하고, 분석해야 하며, 이해해야 한다. 또, 그것을 시스템에 적용해야 한다. 그들이 어색해 하지 않도록, 몰래 말이다.
아직까진 이 분야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부족하다. 학교에서 전공한 학문과 이를 위하여 습득한 개발 기술 또한 업무의 도메인 분야이다. 그리도 짜증내던 자바스크립트라는 언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재고해볼 시기이다.
사용자와의 인터페이스. 서서히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최근 동향을 보며 흥미로워 하는 나를 볼 때, UI와 UX 두 단어가 앞으로 몇년간 나를 사로 잡게 될것 이라 예상해본다.
이곳에서 사라진 사람을 위하여
세상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인가?.. 우울증의 시작은 이런 생각이 아닐까 싶다. 시작은 이러지 않았을까… 늦은 나이에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 다시 학교에 들어오려 했으나, 나이와 여러 현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받아주지 않는다. 다시 취업, 그리고 또 취업. 몇몇 회사를 전전긍긍하다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다.
학교에서 함께 술마시고, 함께 공부하던 형이 스스로 현실을 외면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난 연구실 선,후배들과 놀러가기 위해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었으며, 좋은 날씨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전 회사의 한 건물에서 그를 만났다. 둘다 술이 조금 취한 상태였기에, 반갑다고 끌어안고 난리였다. 형 어디 있어요? 라는 질문에 이 건물에 있다고, 조만간 연락해서 술한잔 하자고.. 하기에 알겠다고 뒤 돌아서는데.. 일주일 내로 연락안하면 알지? 하며 웃으며 인사하던 형이었는데..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실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었기에 라고 짐작해본다.
그동안 생각해온 자살이라는 것은 가장 멍청하면서도 바보같은 짓이라 생각했는데, 주위사람이 이를 선택한 것을 보며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라 되짚어 본다.
발인이 이미 시작되려 한 시점에 듣게된 소식인지라 찾아뵙지도 못한것 사죄드리며,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떠나셔서 편안한 삶을 되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재형..
누가 개발자의 삶을 보장해 주는가?
일과 사람에 치어 지쳐가는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 격려해 보고자 이 글을 씀.
#1
현재 대한민국 SI개발자 중 한 사람인 본인은 한때 꿈과 열정이 많은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말하길 프로그래머는 나의 꿈이고, 내 인생의 길이고 나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큰 힘이라 했다. 1992년 어느날 2년간 부풀어 있던 오락기가 컴퓨터로 바뀌어 아버지 손에 얹혀 오면서, 그 꿈은 시작되었고, 모니터안에 작은 커서의 깜빡임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조금씩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20년 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프로그래머 아니 개발자 라는 위상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현실과 동떨어진 직업으로 낙인되어 있다. 덩달아 꿈을 쫓던 나 또한 이런 현실에 굴하여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흥미가 떨어져 간다.
현재 나의 생활은 이렇다.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하여 밥먹고 씻고 7시 30분에 지하철을 타면, 8시 40분쯤 사무실에 도착. 일하다가 점심먹고 쉬다가 오후 1시에 다시 일하며, 저녁을 먹고, 10시 조금 넘으면 퇴근. 집 도착시간은 12시.. 씻고, 잔다.
공무원 같은 형식적인 집단과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 택했던 SI. 약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내가 이렇게도 약했던가? 라는 의구심을 가지며, 노력을 그다지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가 더욱 쓰레기 집단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사회는 이미 상당히 부패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나’ 라는 개발자와 이해관계자에 있는 많은 사람들. 같은 회사 개발자, 그리고 개발자의 위라고 일컬어지는 관리자.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거대한 고객. 이러한 피라미드 조직에서 개발자를 챙겨 줄 수 있는 또 다른 조직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과연 다른 조직을 돌보고 있느냐고.. 누군가에게 기대다는 것 조차 우습지만, 조금은 기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인간은 본디 약한 지라, 또 사회적 동물인지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라….
앞으로 이런 생활을 과연 얼마나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올해 초 부터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지며, 자꾸만 약해지는 건 여기서 나뿐일까? 자꾸만 현실에 눈이 간다. 그러면서 욕심이 생기지. 그래서 힘들어 지는거 아닐까?
#2
함께 일하는 사람과 자꾸만 트러블이 생기고 있다. 대화의 단계는 이미 넘어서, 서로 조금씩 피해 가지만 말이다…
#3
조금씩 배우는 것. 회의감이 든다.. 배움에 대해;; 인생무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귀차니즘에 빠져버린 것일까? 아드레날린 관리가 아쉬운 현재이다. 아드레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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